나의연대기_시련극복

[고난극복] 어두운 모범생(초등학생)

행복한일상이야기 2023. 4. 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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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잘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가스라이팅 때문이었지

넌 엄마가 없으니 공부를 못하거나 뭐든 잘하지 못하면 아무도 네 곁에 없을거야.


이게 항상 들어왔던 말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전에 나는 1차 방정식과 비례식을 풀 줄 알았다.
초1때 동네 학원에 잠시 다녔는데,
초등학교 5학년들과 수업을 같이 들었다.
머리는 비상했던거 같다.
물론 행복하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와 따로 살게됐다
할머니가 돈을 벌기위해 사업을 하시러 시골에 내려가시게 됐는데, 나를 데려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한달에 한번 뵈었다.
본인도 용돈 받으시면서 한달에 한번 수학/영어 참고서를 하나씩 사주셨다. 그리곤 만날때마다 점검하셨는데
만족할만큼 책을 다 풀지 않았다면
매번 뺨을 맞았다.
그게 머리 좋은 아들을 위한 행동이셨겠으나
나는 당시의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내가 12살 되던 해, 사법고시를 드디어 포기하시고 수입활동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재혼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족쇄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엄마’라는 존재가 나에게 큰 트라우마임에도
열두살의 나는 아버지의 새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러나, 새엄마는 나를 싫어했다.
그리고 우리 친가 식구들을 싫어했다.
배다른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더 심해진거 같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계속 자랐고,
그러던 중 허약했던 나에게 먹였던 한약으로 체중이 엄청 늘었다. 반에서 가장 뚱뚱했다.
내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고, 엄마가 없다는게 부끄러웠던 당시의 나는 남들에게 계속 나를 숨기고 눈치보는게 일상이 되어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집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술취한 레간자가 나를 쳤고,
차에 치인 나는 ’날아서‘ 머리부터 떨어졌다.

뇌출혈로 중환자실과 입원을 1달넘게 링거를 24시간 맞으면서 지내게 되었다.
나이가 어려서 회복력이 좋았다 뿐이지, 의사가 하루이틀 피가 더 안멈추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한다고 했다 한다.

다행히 완치되고 나서 잠시 아버지와 새엄마 댁에서 지내게 됐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며칠 뒤
아버지와 새엄마가 술이 취해서 집에 들어오더니
날 바닥에 앉히고


왜 엄마라 부르지 않냐고 야단쳤다.

10년동안 가장 큰 트라우마였던 엄마라는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말하고 새엄마 앞에서 바보냐고 묻는 아버지가 미웠다. 그날 참 많이 울었다.

새벽에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는데, 안방에서 새엄마와 아빠가 싸우시는 소리를 들었다. 훔쳐들으려고 했던건 아니었는데, 악에 찬 새엄마의 말을 들었다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으면서…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게 아니잖아
당신이 보기엔 전처 아들이겠지만
내가 잘못한게 아니잖아…

그때부터였다. 새엄마에게 나도 마음을 닫게 된건..
겉으로만 웃게 된건..

그렇게 상처로 뒤덮여 겉으로 어른스러운
가면쓴 어린아이같았던 내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갔다.

2023.04.25 - [나의연대기_시련극복] - [시작하며] 나의연대기_시련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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