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연대기_시련극복

[고난극복] 시련이 가득했던 나의 유년기(출생~유치원)

행복한일상이야기 2023. 4.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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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생
나는 80년대 후반,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친가는 집안사정이 매우 어렵지만, 자녀들 중 큰아들 하나만 공부시키자는 집안이었고
우리 아버지는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법대생이었다.

우리 외가는 잘 살던 집안의 장녀로 공주대접 받으면서 살고 계셨지만
외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사정이 기울어져 힘든 나날을 보내던 여대생이었다.

안다. 당시에 부모 모두가 대학에 다닐 정도인데 무슨 어려운집이냐고 할 수 있다.
그치만, 잘 보면 중요한건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 모두가 수입이 없었다는게 중요하다.

연세가 많아 수입이 없으셨던 친할아버지, 파출부를 하고계시던 친할머니와
외갓집의 일부 돈을 지원받아 근근히 결혼생활을 진행하시며
결국 나까지 낳은것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사법고시를 패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셨던거 같다.
아버지도 30대 초반 패기 넘치는 젊은이였고...
 
2. 부모님의 이혼
내가 4살이 되던 해, 두 분간의 사이가 매우 안좋아졌다.
사이가 안좋아진 이유는

두분의 성향이 안맞았던 것과
외갓집에서 더 이상 아버지의 사법고시 공부를 기다리시지 못한 것
위 두가지에서 기인했다.

결국 외할머니가 내가 살던 월세 보증금을 빼서 엄마와 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절에 들어가서 합격하면 나오라는 "통보"를 하셨다.
당연히 아버지는 거부했고, 이때부터 외가에서 이혼을 종용하셨다고 한다.
공주처럼 자라왔던 어머니는 감히 당시의 외할머니를 거역하지 못하셨고.

이혼을 마음먹으시니 엄마가 나에게 정을 떼려 하셨나보다.
아버지가 공부하러 나가신 상황에서
내가 울면, 왜 우냐고 때리셨다고 한다.
아들을 때리는 모습을 본 아버지도 결국 이혼을 결정하셨다.

이혼하고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던 날,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는
 

네 종자찾아가라. 였다.

아버지한테 4살이었던 내가, "아빠 종자가 뭐야?" 라고 물어봤다고 하니,
당시의 아버지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물론 어머니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으셨겠지..

3. 상처들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됐다.
패기넘치고 자신감 넘치던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이혼남이 되어 심적으로 많이 힘드셨던거 같다.

고모들은 술먹으면 
내가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하는 한편
취한 마음에 "00이 없었으면 처녀 장가도 갈 텐데"라며 얘기하셨다.
나는 깨어있었지만 항상 누워서 잠들었던 척을 했던 기억이 난다.

5살 즈음부터 나는 스스로 "아버지의 족쇄"라고 생각하게 됐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아버지가 공부를 하셨어야 하기에
할머니댁에서 지낸지 1년쯤 지나 어린이집에
등록을 시키셨는데,
반찬투정 한번 없고 주사 맞아도 울지 않던 내가
실내화를 사러 어린이집에 날 두고 잠시 다녀오신다고 하시자


아빠, 나 버리지마


하면서 정말 떠나가라 울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컸던거 같다.

그런 상처에 익숙해지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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